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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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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엄마와 눈 먼 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1-29
조회 44019

치매 엄마와 눈 먼 딸

  

대림성모병원 정신과장

  

영등포구치매지원센터장

  

박신영

 

 작년 봄에 30대 여성이 벽을 더듬거리며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뒤에는 “아이고, 참. 내가 뭐하러 이런 델 오냐? 돈도 없고 나 하나 안 아퍼!” 하며 어르신이 뒤따른다. 딸은 수년전에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시각 장애인이다. 문맹에 가까운 엄마는 한 많은 세월 홀로 남매를 키웠지만 아들은 제 살길 바쁘고, 인물 좋은 딸은 앞이 안 보인다. 영등포구치매센터의 조기검진에서 우리병원으로 의뢰된 환자다.

 가진 것 없어도 건강하나 믿고 살아 왔는데 언제부터인지 엄마는 자꾸 물건 둔 곳을 잊어버렸다. “나이들면 다 그런겨, 나 맨날 산에 가는 거 보면 몰러?” 엄마의 큰소리에 딸의 안심은 잠깐이었다. 작년 말부터 부쩍 심해진 기억감퇴로 인해 방금 들은 이야기도 전혀 모르고 날짜감각이 떨어졌다. 옆집에서 빌린 돈을 안 갚아 싸우기도 하였다. 자세한 기억력검사와 뇌영상 검사등을 시행했다. 알츠하이머 치매다.
 주중에 지방의 맹인학교에 가있는 딸은 노심초사다.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몰라 엄마가 자꾸 연거푸 드시기 때문이다. “엄마, 제발 달력 좀 보고 표시 된 날짜대로 약 좀 드세요” 답답한 마음에 딸의 목소리가 높다. 그래도 엄마는 진료 때마다 “내가 언제 연거푸 먹었냐, 나 잘 챙겨 먹었어!” 실랑이를 벌인다. 한달마다 엄마의 눈과 딸의 기억으로 진료실을 찾아오는 목요일 오후면 진료실은 시끌시끌해진다. “매일 달력도 보시고 전화번호도 외우셔야 합니다.” “여기는 무슨 병원이라구요? 몇 층인지 아시지요?” 나도 매번 큰소리로 교육한다.
 지난 해 여름, 외래 약속시간이 지나도 예의 그 모녀가 안 오신다. 은근히 걱정이 된다. 한참 뒤, 당황함에 벌게진 얼굴로 딸이 들어와 울먹인다. 약속장소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엄마가 안 나타난다는 얘기였다. 아마도 병원예약을 잊어버리고 산에 가 계실 것 같았다. 엄마가 맑은 정신으로 살다 가시기를 바라는 딸의 눈에서, 힘겨운 일상을 이어오던 어깨에서 흐느낌이 이어진다. 나도 마음이 복잡하다.
 다음시간 엄마는 “아, 그때? 응, 잊어버리고 산에 댕겨 오니께 옆집서 난리가 났더라고요. 얘는 집에 와서 한바탕 큰소리 하구요“ 속도 모르고 웃으며 얘기하신다. 약물도 증량하고 보건소 가정방문 간호사와 요양보호사에게도 당부를 해 두었다. “나, 이제 이거 안 먹으면 안 될까?” “엄마 제발! 나 이제 집에 안 와!” 라며 강압과 부탁을 섞은 협박을 하고 엄마는 “내 걱정은 하지도 말어. 너나 잘 살아야지.” 하는 반복적 대화가 오고간다.
 요즈음 들어서는 환자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좀 더 차분해지고 약도 날짜에 맞춰 드신다. 어제 드신 반찬도 기억하신다. 딸의 정성이리라. 나도 기쁘다.
 치매는 예방을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병의 경과를 늦출 수 있는 병이다. 올해는 ‘치매관리법’ 이 제정되었다. 여러 가지 국가 정책에 힘입어 치매 엄마와 눈 먼 딸, 앞으로도 더욱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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